|
중견 제약사인 부광약품(003000)은 이런 큰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간파했던 기업이다. 이제 막 글로벌 협업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업계 분위기 속에서 지난 2000년 초반부터 발 빠르게 움직여온 부광약품은 이미 글로벌 후기 임상 2상에 도달한 신약 후보를 2개나 배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58년 역사의 부광약품이 신생 벤처 못지않은 기민함과 활기로 변화에 앞장설 수 있는 데는 연구원 출신의 최고경영자(CEO) 유희원(54·사진) 대표의 힘이 컸다. 1999년 입사한 이래 부광약품이 자체 개발한 첫 신약이자 국산 신약 11호 ‘레보비르’ 개발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유 대표는 글로벌 협업을 통한 신약 개발이 부광약품의 미래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부광약품의 미래 청사진은 그가 2013년 부사장이 되면서 본격화해 해외 바이오벤처 인수, 신약 초기 후보물질을 도입한 공동개발, R&D 투자 비중 확대(2017년 기준 연 매출의 20%) 등의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연매출 1,500억원 규모의 중견 제약사가 해외 기업을 100% 인수하는 등 국내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공격적 행보를 보이니 외부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있었고 나 역시 ‘이게 맞는 것일까’ 하는 불안함을 갖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 분명한 성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이 붙었다”고 웃었다. 그는 이어 “특히 처음 대표직을 맡은 지난 3년간은 오너 경영인인 김상훈 전 대표와 함께 회사의 장기 비전을 위한 여러 투자를 진행한 시기였다”며 “투명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인사제도를 손보는 노력을 통해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등 재정비를 끝낸 상황이며 이제 말 그대로 성장의 결과물을 보여줄 일만 남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돌이켜보면 부광약품이 신약 개발의 중심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상황은 유 대표가 개인적으로 꿈꿔왔던 미래와도 맞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회사에 좀 더 헌신적일 수 있었다. 유 대표는 부광약품에 입사한 계기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약학을 전공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진짜 원하는 ‘치료’를 하려면 실험실에 머무르기보다는 기업에 가서 신약을 개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부광약품은 때마침 자체 개발한 첫 혁신 신약 ‘레보비르(B형간염 치료제)’의 임상을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연구원으로 들어온 유 대표는 전문지식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인정받아 곧 본사의 프로젝트팀으로 옮겼고 임상시험승인신청(IND)이라는 초기 핵심단계부터 2006년 출시 후 마케팅에 이르는 영업까지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입사 후 수년 동안은 일이 너무 재밌어서 주말이 되면 월요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면서 “내가 왜 이 재미를 진작 몰랐을까, 실험실에 계속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며 일에 온전히 몰입했다”며 웃었다. 약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 후 과정까지 밟은 연구원이 기업을 이끄는 경영인으로 거듭나게 된 배경이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레보비르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일본 에자이와 미국 파마셋에 각각 기술 수출(라이선싱 아웃)되는 과정에서 밤을 꼬박 샌 날도 부지기수다. 13년 연구 끝에 개발된 레보비르가 출시 1~2년간 연매출 2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다 부작용 이슈가 불거지며 추락한 기억도 쓰라리다. 하지만 레보비르가 남긴 유산은 적지 않았다. 유 대표는 “레보비르 역시 미국 회사와 공동연구개발을 한 프로젝트로서 글로벌 기업들이 신약 개발을 어떻게 하는지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또 레보비르의 기술 수출 경험, 필리핀·태국 등 동남아시아 수출을 진행하며 쌓은 노하우 등은 지금 부광약품이 신약 개발 중심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핵심동력이 됐다”고 돌아봤다.
실제로 당시의 경험치는 현재 유 대표가 회사의 신약 개발 포트폴리오를 짜고 사업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 가이드라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 대표는 “신약의 성공에는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에 올인하기보다는 유망 프로젝트를 여럿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며 “또 부광약품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은 너무 먼 미래를 보기보다 성과를 내가면서 계속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일단 빨리 개발할 수 있는 프로젝트 위주로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발견한 신약 후보가 현재 미국 후기 임상 2상 완료를 눈앞에 둔 당뇨·비만 치료제 ‘MLR-1023’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파킨슨 환자의 운동장애(LID) 치료 신약 ‘JM-010’이다. 둘 모두 기존에는 없던 혁신신약으로 뛰어난 약효와 시장성을 인정받고 있다.
유 대표는 두 신약의 개발이 성공할 경우 연간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넘어 회사 구성원들에 값진 신약 개발의 경험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하고 있다. 부광약품은 당뇨·비만 치료제 개발은 미국 멜리어와, 운동장애 치료 신약 개발은 100% 자회사인 덴마크 콘테라파마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유 대표는 자신이 레보비르 개발을 통해 글로벌 신약 개발 전문가로 인정받았듯 회사의 임직원들 역시 이런 경험을 통해 미래 핵심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외부와의 협력은 군살 없고 기민한 조직을 꾸려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유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부광약품의 목표는 명확했다. 혁신신약을 출시해 글로벌 제약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목표는 정확히 설정하되 방법은 여러 갈래로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신중함이 묻어났다. 예컨대 부광약품은 국내외 유망 바이오벤처에 직접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으로도 유명한데 유 대표는 이 같은 행보 역시 신약 개발을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유 대표는 “신약 연구개발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현재 영업이익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색한 해법이 직접투자”라며 “지분투자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 현황을 직접 들여다보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최적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부광약품은 현재 국내 줄기세포 연구개발 기업 안트로젠, 미국 에이서테라퓨틱스 등에 투자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고 캐나다 바이오투자사 TVM캐피털이 운용하는 펀드 등에도 투자해 상당한 이득을 봤다.
3월 주주총회를 통해 단독 대표이사가 된 그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화학 기업 OCI와 신약 개발 및 바이오벤처 투자를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년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 수익을 내고 현재 매출액의 20%에 이르는 R&D 투자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상장사 대표로서 투자자들과의 접촉도 늘릴 방침이며 과감한 해외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유 대표는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지난 3년간 무엇이 부족했나 생각해보니 내외부적으로 회사의 비전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올해부터는 기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과도 자주 접촉하며 신약 개발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꾸준히 진행해왔던 일들을 빈틈없이 해나간다면 이르면 3년, 늦어도 5년 안에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으리라 나부터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She is…
△1964년 서울 △1995년 이화여대 약학 박사 △1995~1997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박사 후 과정 △1999년 부광약품 연구소 입사 △2005년 부광약품 임상 담당 이사 △2009년 부광약품 개발·임상 담당 상무이사 △2013년 부광약품 부사장 △2015년 부광약품 공동 대표이사 사장 △2018년 부광약품 단독 대표이사 사장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