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 오일을 세운 J.D. 록펠러는 1916년 세계 최초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철강 산업 거물 앤드류 카네기나 철도 산업의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또는 전설적인 은행가 J.P. 모건이 아니라, 바로 록펠러였다. 그리고 당시 원유가 주로 기계, 의약품 및 조명에만 사용되었고, 운송 연료로는 1900년대 초반에서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도 그러했다.
그 이후로 원유는 그 어느때보다 가장 중요한 원자재가 되었다. 실제로, 지난 세기 일어났던 거의 모든 지정학적 사건은 원유와 관련이 있었다.
그렇다면 원유는 왜 그렇게 중요해졌을까?
전략적 군사 자원
원유는 1차 세계 대전의 전략적 필수품이었다. 1913년 처칠은 영국군을 연료로 석탄 대신 원유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은 석탄이 풍부했지만, 원유는 없었기 때문에이 논란이 컸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영국 해군의 활동 범위를 훨씬 더 크게 만들었고, 육군의 전술을 참호전에서 전차전으로 바꾸는데 일조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데는 원유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처칠의 결정은 영국이 수천 마일 떨어진 에너지원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중동의 유전 지대가 전략적으로 중요해졌고, 미래 갈등의 씨앗을 품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원유가 대부분의 군사 전략이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일본의 진주만 침공은 미국이 대일본 원유 판매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발생했다. 일본은 미국이 동인도 제도의 유전 지대에 접근을 막는 것이 두려웠다. 독일 또한 바쿠 유전 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소련을 침공했고, 코카서스 전투로 막을 내리게 된다(히틀러는 코카서스 주둔군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투입을 거부하면서, "바쿠의 원유를 얻지 못하면, 승리도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독일은 두 곳 전투에서 모두 패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는 자국내 자원을 상당 부분 사용한 결과, 전쟁이 끝난 후 심각한 자원 고갈에 부딪혔고, 또 한 차례의 장기전이 일어날 경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게 되었다. 소련과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점차 이 문제가 부각되었다. 따라서 미국 또한 중동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에서 케네디까지 미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이라크, 레바논, 이집트 및 쿠웨이트의 모든 유전 지대를 폭격/파괴하기위한 세부 계획(소위 "oil denial policy")을 수립해 놓기도 했다. 소련이 이 지역을 차지하는 일을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중동에 대한 의존도로 인해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아주 취약했다. 욤 키푸르 전쟁에서 미국에 이스라엘 편에 서자, 1973년 중동은 대미국 원유 수출을 금지했고, 미국 경제는 침체에 시달렸다. 유가는 갤런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나 뀌었고, 그 결과 1973~1974년 주식 시장은 붕괴를 격었다.
페트로달러의 부상
미국은 중동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경제적 무기로서 원유의 역할을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닉슨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거래를 통해 유가를 미국 달러로 표준화하기로 했다(이후 페트로달러 제도로 부르게 됨).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산 모든 원유는 미국 달러로 판매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있게 된다. 결국 OPEC의 모든 회원들이 비슷한 거래를 맺었고, 1975년이 되자 모든 OPEC 원유는 미국 달러로 표준화되었다. 이로 인해 OPEC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싶은 국가는 우선 미국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사건은 21세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원유가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원자재였고, 세계 원유 상당 부분을 OPEC가 통제하고 있었으며, 미국 달러가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통화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계의 원유 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 금융 시장의 유동성 또한 증가했으며(달러 유통량이 증가했기 때문), (미국 달러의 전 세계 수요 증가로 인해) 미국 금리는 계속해서 낮아졌다.
페트로달러의 부상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원유 무기화를 불식시키려 하면 할수록, 미국과 미국 경제의 원유 의존도는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가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원유를 유럽에 유로로 거래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퍼지기도 했다. (참고: 최근 중국이 자국 원유를 위안화로 판매할 의도를 발표한 후, 향후 진행될 상황이 흥미로워지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 달러의 패권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원유 의존도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증명되었다. 원유 공급 부족으로 유가가 3배나 뛰었고, 미국은 또 한 차례 경기 침체를 겪게된 것이다. 이번 사태로 많은 나라들이 교훈을 얻었고, 대체 연료에 대한 투자로 원유에 대한 취약성을 줄여나갔다. (이때가 바로 프랑스와 일본 같은 국가가 대규모 핵발전 시설을 건설하게 된 시기였다.)
유가 급등으로 멕시코, 중국 및 브라질 같은 소규모 산유국들도 마침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중동이 안정화되자, 이 기간 동안 증가된 원유 생산량이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고, 유가는 하락했다. 이는 산유국들의 경제를 피폐화시켰고, 궁극적으로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휴고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을 이끌어 냈다(그리고 198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또 다시 침체에 빠졌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유전 지대를 점령하자, 미국은 즉시 개입해 이라크를 몰아냈다. 또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미국/중동 동맹 관계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1989년 중동 전체에 주둔한 미군 병력은 7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 이후 약 25만 명의 병력이 이 지역에 주둔하기 되었다. 미국은 중동산 원유에 의존했다. 에너지원으로서도 필요했고, 자국 통화를 위해서도 그랬다. 미국은 중동의 정치적 불안정이 커지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의 입장은 아주 분명하다. 페르시아만 지역을 장악하려는 외부의 어떤 시도도 미국의 국가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며, 그러한 공격은 필요한 모든 수단을 통해 응징할 것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1980년 연두 교서
그런데 미국의 중동에 대한 의존가 갑자기 바뀌게 된다.
"천연가스의 사우디 아라비아"
지난 10년 동안 모든 것을 바꿔놓은 몇 가지 중요한 혁신 기술이 나타났다. 수력 파쇄, 수평 시추, 3D 탄성파 지도제작 및 액화 트레인 등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혁신 기술으로 인해 불과 몇 년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곳에서 다량의 천연가스를 추출 및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액화 트레인은 천연가스의 운송을 가능케 했다. 종래 천연가스는 파이프 라인을 통해 가스 형태로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파이프가 손상 또는 파괴될 염려가 있었다. 따라서이 파이프 라인 건설에는 엄청난 초기 인프라 비용이 소요됐고, 계약 기간도 일반적으로 20년 이상으로 장기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액화 트레인과 액체 천연가스(LNG)의 등장으로 운송이 훨씬 쉬워졌다. 또한 초기 개발 비용 및 시간이 적게 드는 셰일 원유가 판도를 바꿔 놓았다. 기존 재래식 원유 개발에는 수십년의 기간과 수천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셰일 원유 생산은 몇 개월의 시추 기간과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수력 파쇄 및 수평 시추 기술의 등장으로 마르셀 루스 셰일 지역 및 우티카 셰일 지역 같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셰일 혁명"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2012년 러시아의 총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을 넘어서,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급부상했으며, 2013년 사우디를 누르고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되었다. 현재 미국은 5년 연속 세계 최대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환경보호로 유명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원유 호황을 이끌었다.
"우리는 100년 동안 미국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천연가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행정부는 이 에너지를 안전하게 개발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 버락 오바마, 2012년 연두 교서
흥미롭게도,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중동에 대한 관심을 상당 부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세력 역학의 변화
원유 생산의 탄력성이 커지자, 세계 원유 시장에 대한 중동의 지배력이 완화되었고, OPEC의 힘도 약해졌다.
OPEC는 시장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2014년 원유 생산량을 늘려 경쟁국가를 제거하려했다. 그러자 2014년 배럴당 약 100달러였던 유가는 2016년 초 배럴당 28달러까지 급락했다. 저유가는 세계 원유 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고, 재정적 어려움이 OPEC 회원국들에게도 닥쳤으며, 2017년 감산 조치로 이어졌다.
이렇게 OPEC의 원유 관련 조치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계속 유지된 경우가 없었다. 시아파의 이란과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처럼 많은 OPEC 회원국들이 서로 적대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 시장에 대한 중동의 지배력이 감소하자, 오히려 세계는 안정화되었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적 가치는 원유 시장에 대한 지배력과 그로 인해 원유 생산을 늘리거나 줄임으로써 불안정한 지정학적 사건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나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사우디아라비아 처럼 국유가 아니라, 민간 기업의 소유이기 때문에 가격 움직임에만 반응하게 될 것이다. 즉 기존 세계 지정학적 중재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 능력이 상당 부분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자체는 에너지 독립성이 더 커지기 시작했지만, 세계 시장은 여전히 유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국에도 미칠 것이다.
원유는 여전히 왕이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초강대국들은 여전히 대규모 산유국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중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대리 전쟁을 치러왔다. 베네수엘라(검증된 원유 매장량 세계 최대)의 경우, 러시아는 수백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정권 퇴출을 위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경우, 러시아는이란(원유 매장량 세계 4위)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매장량 세계 2위)를 지원하고 있다. 만일 중동의 긴장이 고조되고, 다시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중국 같이 중동산 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이 지역에서 존재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다른 강대국이 개입할 가능성도 크다.
역사의 바퀴
원유 하나가 근대 역사의 바퀴가 움직여 왔다고 해도 확대해석은 아닐 것이다. 원유는 여러 차례 전쟁에서 승리자였고,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휴전과 동맹을 이끌어 냈으며, 여러 나라의 경제 잠재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역사상 원유 만큼 수많은 중요한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자원도 없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에 계속 영향을 미칠 원자재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세계 에너지 자원을 주시해야 하며, 과거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지난 한 세기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한 사실은 에너지를 지배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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