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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Amgen이 되겠다는 김선영 박사님의 꿈이 이루어질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이오 기업의 성장은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특허 그리고 대표이사의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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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몇 명의 과학자와 모험 자본가들이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81년 초 몇몇 벤처투자가(VC)로부터 약 19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그 때 인원은 7명 뿐이었다. 이 회사는 1983년에 IPO(기업공개)를 통해 나스닥에 등록하게 됐다. 이 때 팔고 있는 제품은 없었다. 암젠(Amgen)의 역사는 이렇다.

2001년 기준으로 암젠은 매출 40억 달러로 연구개발비 8.7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세후순이익이 11억 달러를 기록하는 초우량 기업이 됐다. 전체 인원 7300여 명 중에서 반이 넘는 3800명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총 주식수가 그 동안의 무상증자를 통해 10.5억 주에 달하며, 시가 총액은 597억 달러(78조원)이다. 국내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의 48조원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액은 삼성전자 2000년 매출액 34조에 비하면 1/6 정도이다.

삼성전자의 PE가 9 정도인데 비하여 암젠의 PE는 무려 55이다. 이는 GE의 PE 27의 두배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 투자가들로 하여금 암젠을 이토록 사랑하게 했을까?

첫째, 물질특허의 위력이다. 암젠의 주력품목은 두가지. 에포젠(Epogen)으로 알려진 빈혈치료제와 뉴포젠(Neupogen)으로 알려진 항암보조제이다. 이 둘은 암젠이 물질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20여 년간 독점적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다. 바로 신약의 위력인 것이다. 신약은 현재 특허출원 후 20년간 특허로 보호된다. 특허출원 후 상품화 전까지 5-6년간의 개발기간을 고려해 다시 개발기간 만큼 연장해주면 사실상 25-26년간 독점권을 가지고 제품을 판매하는 셈이다.

둘째,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이다. 1980년에 설립된 암젠이 첫 제품(Epogen)을 판매한 것은 회사 설립후 10년이 지난 1989년이다. 무려 10년간을 줄기차게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암젠은 지금도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에 매년 투자하고 있다. 국내 제약회사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비가 5% 이하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차이다. 사실 암젠의 신약 연구비는 국내의 정부와 민간을 포함한 바이오 분야 연구비보다 많다. 암젠은 신약이 가져다 주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알기에 신약 연구개발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다.

셋째, 수익성과 성장성. 암젠의 제조원가율은 약 15% 정도이다. 고부가가치의 신약이기 때문이다. 암젠은 10년 넘게 매년 평균 10%를 넘게 성장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물론 이 배경에는 세계적인 물질특허를 획득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있었다.

넷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들 수 있다. 암젠의 3대 회장인 셔러 케빈(Sharer, Kevin)(물론 한국적 개념의 오너가 아니며 다만 대표이사겸 이사회 의장임)은 92년부터 암젠의 이사회 이사로 있으면서 2000년에 CEO겸 회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GE 출신이다. 그리고 정보통신회사인 MCI의 사장으로 있었다. 그야말로 전문경영인인 것이다. 이제 암젠은 창업자의 회사가 아니라 주주들의 회사가 되어 투명하게 경영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 최고의 바이오 기업인 암젠의 이면에는 10년간 제품개발을 위한 피와 땀이 있고, 제품없는 회사를 10년간 믿고 지원해준 기관투자가와 주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R&D에 집중하고 있는 경영진들이 있었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이 반도체 산업처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하려면 자본투자가들 및 코스닥 시장이 미래를 지배할 산업인 바이오산업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경영진은 상품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전력을 다해야 하며,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벤처인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의 바이오 기업들이 한국의 암젠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격려를 하며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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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미국 브루클린 출생의 과학자 골드와서는 당시 과학계에서 가설로만 존재하던 환상의 물질을 찾기로 결심했다. ‘EPO’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이 단백질은 골수에서 적혈구를 생성하는데, 그 양이 워낙 적고 일시적으로만 나타나는 물질이어서 과학계 일각은 그 단백질의 존재조차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존재가 규명된다면 수백만 명의 악성 빈혈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 시카고의 작은 병원에 연구원으로 취직한 유진 골드와서는 근처의 도축장에서 양의 혈액을 채취하는 일을 시작했으나 끊임없이 실패만을 경험했다. 15년 뒤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EPO가 혈액보다는 요(尿)에 과량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이는 곧 골드와서의 연구가 무위로 돌아가는 것임을 의미했다. 

낙담한 골드와서를 찾아온 행운의 여신은 일본의 과학자인 미야자키였다. 2.5t의 빈혈환자 오줌을 골드와서에게 줬는데 여기서 그는 8㎎의 정제된 EPO를 얻을 수 있었다. 손톱만큼의 분량에 불과했지만 이 단백질은 당시 과학계에서 누구도 갖지 못했던 재산이며, 동시에 바이오텍 기업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암젠’ 성공의 토대가 되었다. 

벤처기업인 암젠은 EPO의 상용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변형치료제인 EPO가 성공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암젠이 창업 초기에 투자가들에게 제시한 사업계획서에는 기름을 만드는 미생물, 양계산업을 위한 조류 성장호르몬 등과 같은 연구계획들이 주류였다. EPO는 계획서 말미에 포함될 정도로 홀대받던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더욱이 골드와서는 이 물질에 대한 특허조차 출원하지 않은 상태였다. 암젠에 출자했던 거대 진단기업인 애보트조차 EPO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으며, 연구 중단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암젠의 과학자들은 끊임없는 연구로 EPO의 단백질 서열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최초로 이 인체단백질을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분리해내 대량생산할 수 있게 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바이오 기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암젠이 EPO를 대량생산해 만들어낸 빈혈치료제 39에포젠39

암젠은 매년 10조원이 넘는 매출과 3조원이 넘는 이익을 내는 미국의 초우량 바이오텍 기업이다. 미국 증시의 S&P500지수에 500개 기업이 포함돼 있는데, 미국의 유력 경제지들은 이 가운데 가장 미래지향적인 기업 중의 하나로 암젠을 꼽는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60조원으로 전체 미국 제약회사 중 6위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80조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암젠의 기업가치 규모가 쉽게 짐작될 것이다. 
암젠의 모태가 되었던 과학자 골드와서는 47년간 재직했던 시카고 대학에서 2002년 은퇴했다. 가장 성공적인 바이오텍 기업의 모태가 된 연구업적에도 그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EPO에 대해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천만 달러가 되었을 로열티 수입을 챙기지 못했다. 그가 최초로 발견한 EPO의 덕택으로 생명을 구한 수백만 명의 환자들이나, 암젠을 매일 주시하는 월스트리트의 사람 중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를 인터뷰했던 시카고 트리뷴지의 저널리스트 메릴 구즈너는 낡은 장비가 어지럽게 널려 있던 골드와서의 연구실에 대해 “개발도상국에나 중고 장비로 팔려갈 만한 것들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과학과 산업은 EPO의 사례처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지만, 과학자와 기업은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이오텍 기업의 효시인 암젠의 성공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posted by 투자를 통해서 배우는 인생